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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준관 박사의 <신앙순례> 첫번째 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5-23 22:53:05 조회수 85

하나님의 역사방법 1 


전체본문 : 느헤미야 8:1-9

주제본문 :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 지라” (8:8)

    목 : 하나님의 구원을 순례하는 신앙


   오늘 성서공회 한글성경완역 및 출간 100주년이 가지는 깊은 의미 하나가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극악한 일본제국주의의 학대와 핍박 가운데서도 "성경"의 권위를 끝까지 지켜온 이 땅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의 헌신은 한국교회를 오늘까지 하나로 묶어온 중심적인 '추' 와 영적 에너지가 되어왔습니다. 이 거룩한 유산은 오늘의 한국교회를 떠 받처 주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합니다. 더욱 그 속에는 생명을 바쳐  100년의 역사를 지켜온 성서공회의 많은 주의 종들이 흘린 눈물과 헌신이 숨어 있음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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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 역사적인 기념 예배에서 말씀을 증언하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서학자도, 교회 역사가도 아닙니다. 다만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한국교회의 오늘을 고민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한 교육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증언은 제가 고민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주소에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직면한 현실을 풀어가는 접근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사회학이 사용하는 ‘키 워드’(key word) 네 개를 상징적 언어로 삼아 오늘 한국교회가 가고 있는 흐름의 의미부터 보고자 합니다.


   종교사회학이 사용하는 처음 key word는 ‘교회성장’(church growth)입니다. 한국교회의 눈부신 성장은 산업화와 맞물린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까지를 계수합니다. 이때 한국교회는 6만 교회와 1200만 신도를 얻는 절정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와 동일한 종교시장의 미국교회성장도 1950년대 극치에 이르렀습니다. 1960년대 초 미국개신교회는 전 인구대비 68%를 신자로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국교회와 한국교회, 이 둘을 20세기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때가 교회성장의 ‘절정’, ‘크라이맥스’(climax)였으며, 이 climax는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습니다. 


   바로 그때 한국교회에는 화려한 ‘기독교왕국’(Christendom)을 꿈꾸는 여러 가지 징후들이 여기저기에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형화”, “목회자의 절대권력”, “승리주의”를 꿈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역풍 하나가 슬며시 교회 뒷문으로 숨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역풍은 ‘교회성장 이후’(After Church Growth)라는 두 번째 key word였습니다. 교회성장은 이미 끝났다는 신호였습니다. ‘교회성장 이후’는 이미 한국교회와 미국교회는 동시적으로 조용히 그러나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교회 안과 밖을 난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1990년에서 2000년까지 10년, 미국교회는 1960년에서 1970년까지 10년 동안 밑으로 슬며시 스며든 ‘성장이후’라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약 1만 명으로 추정되는 안티(Anti)들의 조직적인 기독교 파괴공작도 문제지만, 웬일인지 이때부터 교회는 서서히 지식인, 젊은이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교회성장이후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싸인‘(sign)였습니다. 특히 1985년 여의도에서 가진 마지막 거대한 선교 100주년 기념대회를 정점으로 한국교회는 갑자기 성장을 멈췄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교회가 애써 성장이후 라는 ‘경고성 신호’를 무시하면서부터 큰 공백하나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공백을 지난날의 영광으로 다시 채우고 그것을 재현하려는 환상을 되풀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을 “교회성장 신드롬”(church growth syndrom)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성장이 멈춘 그 순간, 불안해진 한국교회는 대단히 위험한 선택을 모험하고 나섰습니다. 실은 이때 한국교회는 성장이후기의 공백을 “성경"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교회는 이 거룩한 소명을 포기하고 너나할 것 없이 미국 발 유행성 프로그램으로 교회성장 신화를 되살리려 하였습니다. 그것은 소위 'seeker's sensitive' 구도자 예배, 열린 예배로 나타나기도 하고, 갑작스레 유행하는 극장식 교회건축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제단은 십자가와 성경 그리고 촛대 모두 치우고 대신 ‘와이드 스크린’(wide screen)으로 무대화되고, 설교자는 가수처럼 ‘마이크’(mike)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설교하는 ‘스타일’(style)로 표현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젊은 목회자들은 이것저것 모방하는 것을 목회의 생명으로 삼았습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급부상한 것이 몇 몇 ‘초대형교회’(mega-church)였습니다. Mega-church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mega-church의 급부상이 새신자의 영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바꿔치기 한다고 해서 종교사회학은 이를 '스윗치‘(switch)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Switch라는 용어는 세 번째 key word입니다. 그러나 "switch' 라는 말 한마디가 담고 있는 의미는 한국교회 운명을 갈라놓는 폭음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작은 교회들은 점점 허약한 공동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나는 ‘생존게임’(survival game)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한국교회는 서서히 기독교 왕국화로 변신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국교회는 심각한 신학적 오류하나를 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교회성장기로부터 움트기 시작한 기독교왕국의 꿈이 하나의 거대한 조직으로 탈바꿈 하면서, 한국교회는 사실상 교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보다 우위에 놓는 무서운 우를 범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설교자의 목소리가 성경의 내면의 말씀보다 더 커졌습니다. 오늘 성경은 설교와 성경공부를 뒷받침하는 ‘참고서’로 전락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왕국화 되면서, 신앙의 권위가 성경으로부터 기독교왕국으로 전이되는 동안, 이 틈새에 네 번째 key word가 등장하여 한국교회를 ‘코너’(corner)로 계속 몰아가고 있습니다. 종교사회학에서는  이를 ‘영적으로 살고 종교는 거부하는’(spiritual, but not religious)부류라 합니다. “제도화된 교회는 거부하고, 홀로 영적인 것을 찾아 나선” 새로운 부류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 네 번째 흐름, 형식화된 교회는 거부하고 홀로 영적으로 살려고 교회를 떠나는 흐름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젊은이들 속에 확산되어가고 있다는 현상은 미래교회의 위상을 어둡게 만드는 새로운 세속적 풍조입니다. 지난 몇 년 사이 미국에서는 이런 부류의 젊은이들이 매해 2~3%씩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조용히 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교회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이 물음은 바로 우리 모두 우리자신에게 조용히 물어야 할 신학적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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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성경본문, 느헤미야 8:1-9은 포로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개축하고, 하나님 앞에 봉헌한 축제와 그 이후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주전(BC) 538년은 바벨론포로로 부터의 해방과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분명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제2출애굽이었습니다. 에스겔의 강렬했던 예언도, 제2이사야의 아름다운 꿈 그 어느 하나도 실현되지 않는 예루살렘 도성의 황폐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유대인들에게 영적인 기쁨을 되찾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BC 520년에서 BC 515년, 5년간의 민족적 노고는 제2성전을 완공하고, 드디어 하나님 앞에 봉헌하는 바로 그 자리, “젊은이들은 희망을”, “늙은이들은 통곡“으로 그 자리를 메웠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성전이 봉헌된 그 이후, 그곳에는 와야했던 영적 기쁨도, 미래 소망도 오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소중한 제사의 처소이지만, 성전 그 자체는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구원을 대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성경의 권위보다 교황의 권위를 드높였던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나 성경의 권위보다 설교의 권위를 우위에 놓아가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눈 여겨 보아야 할 ‘아이러니’(irony)의 한 장면입니다. 성전봉헌이 민족적 ‘회심’(메타노이아- metanoia)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생겨난 공백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화려한 프로그램으로 이 공백을 색칠하는 동안, spiritual but not religious group은 떠나가고, 교인들은 점점 영적 피곤함, 영적인 탈진으로 빠져 들어가는 오늘의 이 역설적인 공백을 우리는 예리한 눈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수문광장에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이들은 그 당시 spiritual, but not religious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종교 문화에서 아무런 영적희열을 경험하지 못한 빈공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수문광장 한 가운데서 갑자기 통곡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울게 만든 것은 에스라도, 느헤미야도, 레위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울게 만든 것은 ‘페르시아’(Persia)에서 제사장 에스라가 가져온 율법 책, 성경말씀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율법말씀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했다는 말은 종 되었던 선조 이스라엘을 애굽의 사슬로부터 해방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을 기억하는 거룩한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 역사의 무대에 내려 오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죽음으로부터 해방하신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그 순간, 수문 광장에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한번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대단히 소박한, 그러나 오랜 세월 망각했던 거룩한 신앙의 사건이 이곳 수문광장에서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는 그 순간,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고 감사하는 순간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서야 비로써 자신들이 경험한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이 옛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끌었던 출애굽사건의 후속사건임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은 이를 제 1 출애굽, 제 2 출애굽이라 합니다. 이 둘 사이를 이어놓은 것은 '역사적 기억'(historical remembrance)이고 그들이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이때 그들은 애굽으로부터 선조를 풀어주신 제1출애굽과 바벨론으로부터 자신들을 풀어주신 제2출애굽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 살아계신 역사의 주이심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이 눈물은 자기 슬픔의 도취에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에서 오는 감사의 눈물이었으며, 출애굽과 제2출애굽이라는 두 번의 해방을 역사적으로 기억하는 감격 속에 쏟아내는 눈물이었습니다. 여기서 민족적인 회개(metanoia)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말씀을 넘어 그들을 친히 인도하시고 또 동행하시는 하나님과 언약을 다시 맺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원을 순례하는 신앙으로 민족전체가 변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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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이 ‘베스트 셀러’(best seller)로 알려진 ‘래디칼’(Radical)이라는 책은 32살 나이에 미국 초대형 교회의 목사가 된 ‘프랫트’(David Platt) 목사의 신앙고백서입니다. 수 만 명이 모이는 교회, 스크린으로 화려하게 꾸민 무대,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관람객처럼 예배드리는 교회 목사입니다. 그가 아시아의 지하교회를 세 번 방문하게 됩니다. 거기서 Platt 목사는 아무런 장식도, 시설도 없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을 생명으로 붙들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Platt 목사는 돌아와 스크린 떼고 무대 장식 없애고 에어컨 끄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공부하는 모임에로 교인들을 초청했습니다. 1000여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나라를 순례하는 새 신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성경의 권위보다 우위에 놓고, 마치 기독교 왕국이 하나님나라인 것처럼 신자들을 우롱해오던 초대형교회가 성경말씀과 만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순례하는 신앙으로 변화되는 이 ‘회심’(metanoia)! 여기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미래가 있다고 믿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온 인류의 죄와 죽음까지 온몸에 지니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모든 생명을 영원한 생명 안에 품으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또 기다리는 이 거룩한 사순절에 한국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촌에 남겨두신, 제3교회, 한국교회, 그것은 기독교 왕국이 아니라, 성경 속에 펼쳐 가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을 순례하는 신앙만이 한국교회의 미래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앞에서 울 수 있는 민족적 ‘회개’(metanonia)에서 한국교회는, 아니 세계교회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완역 및 출판 100주년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2011. 4. 4 - 연동교회

성서 공회 한글 성경 완역 및 출판 100주년 기념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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